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왜 그렇게들 죽음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냥 그런 스토리구나 라고 생각했던 내용들이, 이제의 나에겐 사소한 스토리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심하게 동요되는 것은 아니지만, 난 죽음에 대해서 깊이.. 그리고 또 다시 더 깊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죽음을 너무나도 두려워한다. 모든 것이 끝이라는 이 짧은 한 단어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고대의 인류에서부터 현대의 인류까지. 죽음이라는 것은 거대한 이슈이자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이다. 모두들 죽음을 극복하고 싶어하고, 죽음으로 갈라서는 이별이라는 것에 대해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떠올린다.
민속신앙의 샤머니즘에서부터 현대의 기독교, 불교, 힌두교 까지. 죽음을 초탈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명제이며 그 공포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나약함을 계속해서 강조하며 종교에 얽매이게 된다. 정말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운 죽음이라는 것. 도데체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한 순간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그리고 그 죽음이 다녀간 뒤에는 평온이 남는다. 평안이 아니라 평온이다. 허무함과 안타까움도 잠시다. 우린 죽음이라는 것이 정말 끔찍하기 짝이없는 무시무시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잔잔하고 은은하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강동원은 마지막 순간, 두려움을 부르짖으며 끝나게 된다. 어쩌면 영화를 본 수많은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슬픔이나 공포가 복받쳐 올라오며 눈물을 쏟았을지도 모른다. 얼른 끝나버리길 바랬던 걸까.. 아니면 반전을 기대했던 걸까.. 처음에는 어서 죽여달라던 그가 변화되고, 삶에 집착을 하기 시작한 순간. 그는 그 순간, 현실의 행복에 부풀어 올랐고 정작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시점에서는 울부짖음으로 끝난다.
덜커덩.. 그의 사형이 집행된 순간. 우리는 조용해 진다. 그리곤 그와 이나영이 늘 목요일마다 만났던 그 면회 장소의 조용한 풍경이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 한장이 길게 비춰진다. 난 이 영화의 그 어떤 장면보다 그 부분이 가장 인상깊게 남는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진 사람의 남아있었던 자리. 그 빈자리. 그 고요하고 잔잔한 그 자리. 어찌보면 허무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평범하다. 그 자리는 잘 정리되어 있다. 의자는 모두 책상 아래로 밀어넣어져 있고 주변도 깨끗하게 쓸었는지 깔끔하다. 늘 있었던 그 자리에.. 사람이라는 존재만 사라진 그 자리에.. 공허하지만 조용한 멈춤이 있다.
난 죽음이 정말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사고하고 살아기지만 언젠가는 분명 죽을 것이 아닌가. 지금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는 것도 아마 죽음앞에 서게 되면 벌벌 떨지도 모른다. 꼴사납게 울부짖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죽음은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처럼 느껴진다. 내가 겪지 않아서 일까.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일이고, 당신도 겪어야 할 일이고, 내 주변사람이 겪어야 할 일이고,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할 일이다. 난 내가 수능을 칠꺼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거기다 두번 볼꺼라는 생각은 더욱이나 한적이 없었고.. 그런데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그것을 해야할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그리고 꼭 겪어야 할 죽음. 어느날 갑자기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죽음을 찾아올지 모른다. 아니, 우리가 죽음의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들 아둥바둥 사는 걸까..
누군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여기가 지옥이고, 우리는 지옥에 떨어진거야.." 만약.. 데카르트가 그렇게 주장했던 이원론. 몸과 마음은 독립적이기 때문에 몸이 죽을지라도 마음만은 남아서 독자적으로 유지된다는 말을 믿는다면, 어쩌면 우리 마음은 이전에 어떤 곳에 있다가 여기로 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곳에서 죽었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일지도.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 마음은 또 다른 어떤 공간 어떤 시간 속에 이전될 지도 모르지.
뭐.. 그렇다고 한들. 이원론을 주장했던 데카르트건 일원론을 주장했던 데넷이건..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이론화 하면서, 그렇게 심도깊고 심오한 연구주제를 탐구하면서.. 아주 간단한 것은 해보지 않았다. 죽음.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논쟁하고 있는 것을 그들이 살아 생전에는 경험주의적으로 결론내리지 못했다. 그들이 없어진 지금, 우리는 또다시 그 남은 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됬을까? 자신들의 이론을 확인했을까? 죽음을 맞는 그 순간에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난 솔직히 데넷의 일원론을 믿는다. 인간의 생체활동이 정지하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나고, 우리가 사고할 수 있는 뇌는 죽어버리게 되고 우리는 더이상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이.. 그래, 이 짦은 단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끝이다. 어둠 속에 둥둥떠다니며 '내가 죽었구나..'라고 사고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끝. 엔딩.
너무나도 심오한 문제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마우스로 "확인" 버튼을 누르기 바로 전에 난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냥 심장마비로 덜컥 하고 어퍼질지도 모르지. 그리곤 죽었다는 선고가 나올수도 있다. 무서운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마 이 창을 다 읽고 다른 메뉴를 보기 위해 마우스를 잡으려는 순간 불이 꺼진듯 나동그라질 수 있다.
그렇게 죽음은 너무나도 가깝다. 삶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평범하다. 지금 숨쉬고 있는 것처럼. 한없이 심오하게 들어가고 싶진 않다. 심오해지면 심오해질 수록 그 평범함에 텅빈 것을 발견하게 될 것 같다. 두렵거나 기대할 필요 따윈 없다. 그저 그렇게 가는 것이다. 그렇게.. 너무나도 지극히 평범한 죽음..
그래.. 난 죽음을 그렇게 생각한다.
고요하다.. 잔잔하다.. 쓸쓸하지만 약간은 슬프기도 하고.. 그렇다고 차갑진 않다.. 아,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들 것 같다..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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