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시스에서부터 오픈유어아이즈, 디아더스, 씨인사이드까지 영화의 연출면에서 어떠한 기법을 주로 사용하였을까를 많이 고민하면서 보았었는데 내가 느꼈던 가장 큰 인상이 바로 디졸브 기법이다. 디졸브 기법이란 이전화면서 이후화면이 자연스럽게 중첩되면서 넘어가는 편집기법을 말하는데, 아메나바르 감독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한번 이상은 꼭 이 기법을 사용하였다. 일일이 그 장면들을 다 기억해 내기는 어렵지만 주인공이나 특정 인물이 다른 이를 생각하는 장면에서 사용되거나 중심인물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주변 인물들의 모습들을 빠르게 한번씩 훑을 때 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법은 보다 관객이 영화 속 이야기의 진행에 부드럽게 빠져들게 해주면서 앞뒤의 내용이 단절된 것 보다는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주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영화의 내용을 약간 벗어나서 주변 환경과 모습을 짧은 컷으로 담아내는 시퀀스가 있다는 것이다. 떼시스에서는 스너프 필름의 내용 중에 스너프 필름의 희생자들과 그 부류의 사람들의 모습을 빠른 컷으로 보여주었고, 오픈유어아이즈에서는 정신병동에서 세자르가 채널을 돌릴 때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들을 보여주는데 묘하게도 이때 강도 사건이나 총구를 얼굴에 들이미는 장면, 사람이 끌려가고 공장지대의 흰 연기가 마구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들이 지나간다. 이와 비슷하게 디아더스에서는 사진첩을 들추어 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레이스가 죽은 이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사후 세계에 대해 인간이 생각하는 단편적인 욕망들을 볼 수 있는 장치로 활용한다. 마지막으로 씨 인사이드에서는 라몬이 보이로로 이동하기 위해 가족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자동차로 이동하는데, 이때 그의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카메라가 잡아준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개, 연인이 손잡고 어딘가로 뛰어가는 장면, 자녀에게 옷을 입히는 어머니,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 기술력의 발전을 상징하는 풍차와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이런 장면들은 약간 영화 속 이야기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나중에 영화를 다 본 관객들이 다시 그 장면들을 회상할 때에는 마치 영화 속 소재를 축약해서 나타내고 있었구나 라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떼시스 속에서 스너프 필름의 잔인함, 디아더스의 죽은자, 오픈유어아이즈의 현실과 가상을 이어주는 매개체, 씨인사이드의 삶을 보면 그런 것 같았다.
감독은 이렇다할 특수 촬영 기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공포 영화들의 깜짝 놀랄만한 영상에 익숙해져있는 우리지만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스릴러는 관객으로 하여금 교묘히 상상을 하도록 만들어서 공포심의 여운이 남기는 영화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보고 난 뒤 밋밋한 기분은 나중에 집에가서 불끄고 누워서 잘 때 한번 다시 생각해보면 더욱더 오싹해지는 그런 느낌이 드는 기분이랄까.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는 어떠한 것들에 대해 재조명할 수 있는 흥미로움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디아더스에서의 빛은 흔히 치유와 구원을 상징하는 개념과는 달리 생명을 죽이는 힘이다. 반면 어두움은 그레이스와 그 자녀들에게 안전과 강한 믿음, 그리고 불행한 진실을 숨기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조금 무겁지만 씨인사이드에서 안락사는 단순히 자살과 비교되는 것과는 달리 라몬에게 스스로의 고통을 끝내고 그가 생각하는 행복을 찾아 떠나는 길로써 표현된다.
리얼리티, 우정, 배반, 우리가 만드는 악몽, 소외, 고립, 죽음, 종교, 신뢰, 가족과 사랑의 어두운 면 등 아메나바르 감독이 취하는 영화 속 테마들은 복잡미묘하게 얽혀있는 듯 하지만 묘하게 다른 시각에서 조감할 수 있도록 그려지고 있다. 나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작품들과 그의 세계관을 조사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드라마틱한 요소들에 매력을 느꼈다. 스릴러라는 장르 속에 긴장감 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잔잔한 여운 속에 깊이 있는 잔상을 관객에게 남기는 그의 능력. 솔직히 말해서 스릴러를 보고 나면 영화보는 내내 계속 긴장이 돼서 영화가 끝난 후에는 피곤함을 느낀 적이 많았는데, 아메나바르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가 만들어 내는 긴장감의 강약과 신선한 시각은 진정 그를 스릴러의 대가라 불릴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죽음 4부작(?)을 보면, 떼시스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추악함으로, 오픈유어아이즈에서는 새로운 자아의 깨달음을 위한 전환점으로, 디아더스에서는 진실의 양면을 숨기는 배경으로, 씨인사이드에서는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과 추구해야할 이상을 가르쳐주는 지표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는 온전히 관객에게 죽음을 매개로 해석되어지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관객들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끔 만든 뒤에 관객과 영화 속 캐릭터가 어떤 것을 발견함으로써 진실을 발견하며 그것을 이끄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떼시스의 미남 주연의 반전, 디아더스의 죽은자와 산자간의 반전, 오픈유어아이즈의 현실과 가상의 반전, 씨인사이드에서는 사랑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려는 아이러니까지.
마지막으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이 만든 영화 DVD를 보면서 Making Film을 보았는데, 그가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서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을 하는지, 특히나 마술사와 같은 재능을 발휘하는 배경음악 작업에서의 그의 모습은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가 영화 편집 작업에서 음악감독과 함께 대화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그는 막연히 영상을 편집하던 도중 특정 한 장면을 골똘히 바라보다가 ‘그냥 이런 느낌이 나는 음악이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간단하면서도 짧은 멜로디를 키보드로 친다. 그리고 그 멜로디를 기초로 음악감독과 상의해서 배경음악을 직접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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