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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P란 Segmentation(세분화), Targeting(표적화), Positioning(위치화)를 말한다. 이 STP는 전략적 마케팅의 본질이다. 이 STP marketing 기업들은 주요한 세분시장을 구분하고, 그 세분시장 중에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을 표적화하고, 각 세분시장에 맞는 제품과 마케팅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즉 마케팅 노력을 분산시키는 것(산탄총 방식)이 아니라, 가장 크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구매자에게 집중시킬 수 있다(소총 방식).

  첫 번째, 시장 세분화는 상이한 제품이나 마케팅 믹스를 원하리라고 생각되는 독특한 구매자 집단을 확인, 규명하고 세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시장 세분화의 여러 상이한 수준과 유형을 연구한다. 시장 세분화는 기업이 정확하고도 치밀한 마케팅을 증대시키기 위해 행하는 노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광고매체와 유통경로가 널리 보급됨으로써 "모든 것에 잘 맞는 한가지 규격"의 마케팅을 실행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대량마케팅 대신 네 가지 수준, 즉 세분시장, 적소시장, 지역시장, 개인별 시장 중 한가지 수준에서 미시 마케팅으로 전향하고 있다. 또한 세분시장은 여러 방법으로 형성될 수 있는데 한가지 방법은 선호성 세분시장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결과 동질적 선호성, 분산적 선호성, 군집적 선호성과 같은 세 가지 상이한 유형이 제시될 수 있다.

  둘째, 시장 표적화는 세분시장 중에서 진출할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세분시장을 선정하는 것이다. 기업이 세분시장의 기회를 확인/규명한 후, 이제 그 기업은 ① 얼마나 많은 세분시장을 서브하고, ② 어떤 세분시장으로 표적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상이한 세분 시장들을 평가하기 위해서 기업은 두 가지 요인, 즉 세분시장의 전반적인 매력성과 기업의 목표와 재원을 살펴보아야 한다. 세분시장을 평가한 결과 기업은 유일세분시장집중, 제품전문화, 시장전문화, 선택적 전문화, 전제시장 확보와 같은 5개의 표적시장 선정형태를 고려할 수가 있다.

  셋째, 시장 위치화는 그 표적시장에 맞는 제품의 주요한 특징적 이점을 개발하고 커뮤니케이트하는 것이다. 즉, 표적 시장에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도록 그 기업의 제공물과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위치화는 제품에서 시작한다. 물론 상품, 기업, 제도기관, 심지어는 사람에게도 시작될 수도 있다. 위치화는 어떤 제품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고객의 마음속에 조치하는 것이다. 즉, 기업은 잠재고객의 마음속에 그 제품을 위치화한다.

  시장조사와 환경분석을 통해 기본전략, 핵심전략을 수립했다면, 기획자 혹은 자사가 기회요인을 발견한 시장에 대해 STP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STP전략은 시장세분화(Segmentation), 타게팅(Targeting), 포지셔닝(Positioning) 전략으로 시장을 나누고 목표시장을 선정하며, 목표시장내에서 자사의 사업이나 제품/서비스/컨텐츠를 어떻게 위치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STP전략은 우선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시장을 나누는 작업을 해야 한다. 시장을 나눈다는 의미는 새로운 시장의 발견이나 틈새시장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으로 시장규모가 적정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하고, 성장률이 높아야 한다. 각각의 세분시장에 속해있는 시장과 소비자는 다른 시장에 속해있는 시장과 소비자에 대해 각기 다른 행동패턴을 보이고, 각각의 시장은 구매력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사의 마케팅 노력에 충분한 반응을 보이는 시장이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염두에 두고 환경분석을 통해 자사가 기회요인을 발견한 시장에서 소비자가 선호하는 기준, 사용용도, 구매목적 등 그 시장에 적합한 기준을 적용하여 시장을 나누고( 정확한 기준의 발견을 위해서는 설문조사 및 컴퓨터 프로그램(SAS, SPSS)을 통한 분석필요 ), 각각의 시장에 속하는 시장환경, 경쟁자, 소비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Profile을 작성해야 한다.

  시장에 대해서는 시장규모, 성장률, 기술동향, PLC상 위치, 시장내 경쟁제품/서비스/컨텐츠, 다른 산업과의 연관관계, 가격민감성, 계절성, 독과점적 담합, 시장진입 및 탈퇴의 용이성, 기술정도, 자금투자 동향 등에 대해 Profile을 작성해야 하며, 경쟁자에 대해서는 기업조직, 사훈, 연구개발, 매출액, 제품, 규격, 가격, 프로모션, 웹사이트, 예산 등에 대해, 고객에 대해서는 라이프 스타일, 나이, 성별, 소득, 교육, 정치성향, 직업, 지역, 구매행동 등에 대해 Profile을 작성해야 한다.

  이때, 각각의 세분시장에 대한 폭넓은 묘사와 분석이 필요하지만, 항상 주안점을 둘 것은 기회와 위협요인, 경쟁우위와 차별화, 자사의 마케팅 노력에 민감한 반응, 가장 신속히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는 요인, 이러한 주안점을 중심으로 시장환경, 경쟁자, 소비자를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장을 세분하는 적정 개수는 3-5개정도로 나누는 것이 좋다고 본다. 전문 시장조사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회사에서 전문적인 기법을 통해 분류하겠으나, 조사 전문인력이 아닌 기획자가 세분된 시장 모두를 파악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자사의 역량에 맞을 것으로 추정되는 3-5개의 시장으로 분류하는 것이 적당하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 작성된 Profile을 검토하여 시장을 선택하는 과정이 표적시장 선정이다. 표적시장 선정은 자사의 규모, 자금력, 인적자원을 감안해서 자사의 마케팅 노력에 반응하고 성장률과 시장규모가 적정한 시장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대기업의 경우 전국적 마케팅이 가능하여 큰 시장을 선택하게 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는 자사의 역량에 맞는 지역적인 소규모 시장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중소기업의 경우 지나친 욕심에 무조건 큰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조차도 못해보고, 시장에 인지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자사가 진입할 표적시장을 선정하였다면 시장내에서 자사 제품/서비스/컨텐츠의 위치를 정립하여야 한다. 이것은 소비자의 마음속에 자사 제품/서비스/컨텐츠를 구매하는 동기를 형성시키기 위한 것으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제품/서비스/컨텐츠를 구매하는 기준은 제품, 시장, 회사에 대한 정보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사와 제품/서비스/컨텐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자사 제품/서비스/컨텐츠가 독점적이라면 문제가 없겠으나, 경쟁 제품/서비스/컨텐츠가 시장내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면 소비자의 마음속에 자사 제품과 경쟁제품간 차별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경쟁제품보다 비교우위 측면이건, 차별적이건 소비자의 마음속에 경쟁 제품/서비스/컨텐츠 보다 분명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이것은 차후에 수립되는 광고전략과도 연계되어 소비자에게 메시지로 전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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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새벽 1시를 넘기는게 습관이 되어 버린것 같다.
과제 폭풍 때문에 맨날 밤새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들었는데,
막상 과제가 떨어지면 그날 어떻게든지 끝장을 보든지
아니면 그 다음날, 최대 삼일을 넘기지 않는게 내 스타일인데.
이건 뭐 끝낼 수도 없고 시작할 수도 없고
모든게 팀플로 엮어져 있으니, 뭐가뭔지 도무지 아이고.
괜히 도넛츠 5개만 억지로 먹다가
너무 달아서 머리가 띵하고 속은 다시 부글부글하고.

블로그에 음악하나를 달고 싶은데
어떻게 달아야할지도 모르겠고
저작권 문제 때문에 다는 것도 문제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아, 그냥 모르겠다.

장기하 - 싸구려 커피

들어버리겠다. 젝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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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바르셀로나 - Please Don't Go  (0) 20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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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왜 그렇게들 죽음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냥 그런 스토리구나 라고 생각했던 내용들이, 이제의 나에겐 사소한 스토리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심하게 동요되는 것은 아니지만, 난 죽음에 대해서 깊이.. 그리고 또 다시 더 깊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죽음을 너무나도 두려워한다. 모든 것이 끝이라는 이 짧은 한 단어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고대의 인류에서부터 현대의 인류까지. 죽음이라는 것은 거대한 이슈이자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이다. 모두들 죽음을 극복하고 싶어하고, 죽음으로 갈라서는 이별이라는 것에 대해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떠올린다.
  민속신앙의 샤머니즘에서부터 현대의 기독교, 불교, 힌두교 까지. 죽음을 초탈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명제이며 그 공포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나약함을 계속해서 강조하며 종교에 얽매이게 된다. 정말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운 죽음이라는 것. 도데체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한 순간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그리고 그 죽음이 다녀간 뒤에는 평온이 남는다. 평안이 아니라 평온이다. 허무함과 안타까움도 잠시다. 우린 죽음이라는 것이 정말 끔찍하기 짝이없는 무시무시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잔잔하고 은은하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강동원은 마지막 순간, 두려움을 부르짖으며 끝나게 된다. 어쩌면 영화를 본 수많은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슬픔이나 공포가 복받쳐 올라오며 눈물을 쏟았을지도 모른다. 얼른 끝나버리길 바랬던 걸까.. 아니면 반전을 기대했던 걸까.. 처음에는 어서 죽여달라던 그가 변화되고, 삶에 집착을 하기 시작한 순간. 그는 그 순간, 현실의 행복에 부풀어 올랐고 정작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시점에서는 울부짖음으로 끝난다.
  덜커덩.. 그의 사형이 집행된 순간. 우리는 조용해 진다. 그리곤 그와 이나영이 늘 목요일마다 만났던 그 면회 장소의 조용한 풍경이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 한장이 길게 비춰진다. 난 이 영화의 그 어떤 장면보다 그 부분이 가장 인상깊게 남는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진 사람의 남아있었던 자리. 그 빈자리. 그 고요하고 잔잔한 그 자리. 어찌보면 허무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평범하다. 그 자리는 잘 정리되어 있다. 의자는 모두 책상 아래로 밀어넣어져 있고 주변도 깨끗하게 쓸었는지 깔끔하다. 늘 있었던 그 자리에.. 사람이라는 존재만 사라진 그 자리에.. 공허하지만 조용한 멈춤이 있다.
  난 죽음이 정말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사고하고 살아기지만 언젠가는 분명 죽을 것이 아닌가. 지금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는 것도 아마 죽음앞에 서게 되면 벌벌 떨지도 모른다. 꼴사납게 울부짖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죽음은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처럼 느껴진다. 내가 겪지 않아서 일까.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일이고, 당신도 겪어야 할 일이고, 내 주변사람이 겪어야 할 일이고,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할 일이다. 난 내가 수능을 칠꺼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거기다 두번 볼꺼라는 생각은 더욱이나 한적이 없었고.. 그런데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그것을 해야할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그리고 꼭 겪어야 할 죽음. 어느날 갑자기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죽음을 찾아올지 모른다. 아니, 우리가 죽음의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들 아둥바둥 사는 걸까..

  누군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여기가 지옥이고, 우리는 지옥에 떨어진거야.." 만약.. 데카르트가 그렇게 주장했던 이원론. 몸과 마음은 독립적이기 때문에 몸이 죽을지라도 마음만은 남아서 독자적으로 유지된다는 말을 믿는다면, 어쩌면 우리 마음은 이전에 어떤 곳에 있다가 여기로 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곳에서 죽었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일지도.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 마음은 또 다른 어떤 공간 어떤 시간 속에 이전될 지도 모르지.
  뭐.. 그렇다고 한들. 이원론을 주장했던 데카르트건 일원론을 주장했던 데넷이건..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이론화 하면서, 그렇게 심도깊고 심오한 연구주제를 탐구하면서.. 아주 간단한 것은 해보지 않았다. 죽음.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논쟁하고 있는 것을 그들이 살아 생전에는 경험주의적으로 결론내리지 못했다. 그들이 없어진 지금, 우리는 또다시 그 남은 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됬을까? 자신들의 이론을 확인했을까? 죽음을 맞는 그 순간에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난 솔직히 데넷의 일원론을 믿는다. 인간의 생체활동이 정지하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나고, 우리가 사고할 수 있는 뇌는 죽어버리게 되고 우리는 더이상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이.. 그래, 이 짦은 단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끝이다. 어둠 속에 둥둥떠다니며 '내가 죽었구나..'라고 사고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끝. 엔딩.
  너무나도 심오한 문제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마우스로 "확인" 버튼을 누르기 바로 전에 난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냥 심장마비로 덜컥 하고 어퍼질지도 모르지. 그리곤 죽었다는 선고가 나올수도 있다. 무서운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마 이 창을 다 읽고 다른 메뉴를 보기 위해 마우스를 잡으려는 순간 불이 꺼진듯 나동그라질 수 있다.
  그렇게 죽음은 너무나도 가깝다. 삶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평범하다. 지금 숨쉬고 있는 것처럼. 한없이 심오하게 들어가고 싶진 않다. 심오해지면 심오해질 수록 그 평범함에 텅빈 것을 발견하게 될 것 같다. 두렵거나 기대할 필요 따윈 없다. 그저 그렇게 가는 것이다. 그렇게.. 너무나도 지극히 평범한 죽음..

  그래.. 난 죽음을 그렇게 생각한다.

  고요하다.. 잔잔하다.. 쓸쓸하지만 약간은 슬프기도 하고.. 그렇다고 차갑진 않다.. 아,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들 것 같다..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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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큰 부류로 두리뭉실하게 묶어서 나눌수는 있겠지만 각 사람마다 자신이 느끼고 행복해 하는 마음은 아마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영화 피아노에서는 그 사랑들 중 세 인물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미혼모 에이다는 6살때부터 벙어리는 아니지만 말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녀에게는 여섯살 난 딸이 있는데 그녀에게 있어서 피아노와 함께 유일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다. 영화의 도입부분에서 에이다는 딸 플로라와 함께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 하기 위해 낯선 땅에 도착한다. 남편 스튜어트는 물질주의적인 인간으로 에이다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남자다. 그의 옆에서 에이다는 소통의 부재를 느꼈고 오히려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자신의 연주를 들어주는 남편의 친구 베인스에게 호감이 가기 시작한다. 그녀는 베인스와 피아노를 통해서 점점 가까워지게 되고 결국 비밀스럽지만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튜어트가 질투와 분노에 휩쌓여 에이다의 손을 잘라버리지만 결국 포기하고 베인스에게 보내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에이다와 베인스는 영국으로 떠나게 되는데, 이때 에이다는 자신이 그동안 아껴왔으며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했던 피아노를 바닷 속에 버림으로써 변화하게 된다. 그녀는 영국 생활에 적응 하면서 새로운 손가락도 가지게 되고 말을 다시 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속 중심인물은 총 3명이다. 벙어리 피아니스트 에이다, 그녀의 남편 스튜어드, 이주민 베인스. 에이다는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강한 신념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구체적으로 왜 6살 이후로 말문을 닫았는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벙어리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자존감이 강한 여자로 나온다. 비록 딸과 피아노 연주만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녀의 완고한 주장을 할 때에는 종이에 펜 글씨를 쓰거나 발을 땅바닥에 구르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행위로 그녀의 의사를 표현한다. 반면에 그녀는 수동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고 했을 때 그녀는 거기에 수긍했고, 피아노를 버려두자는 스튜어드의 말에 처음에는 화를 내지만 이내 체념하고 만다. 베인스 앞에서도 피아노의 건반 수 만큼 그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역시나 거기에 순응하게 된다.

  이러한 그녀 앞에 두 명의 남자는 각각 두가지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로 스튜어드를 들 수 있다. 스튜어드는 그녀의 남편이다. 스튜어드는 물질주의적인 인물이다. 그는 성실했고 계산적이었으며 재산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에이다를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는 에이다에게 최소한의 배려는 하고자 한다. 비록 피아노 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기는 하지만 에이다를 물건 취급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결혼을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베인스와 에이다가 함께 몸을 섞는 장면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다그치거나 캐묻지 않는다. 그는 그 스스로 왜 그렇게 되었는가 에 대해서 나름 고심하고 속으로 삭히고자 한다. 에이다를 집안에 감금시키려고 하긴 했지만 그가 온전히 자신의 분노를 모두 표현하기에는 최소한의 감정표현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이성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이다의 마음이 베인스만을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가 폭발하여 에이다의 손을 자르고 말지만, 나중에는 에이다의 진심을 깨닫고 결국 보내주고 만다. 스튜어드가 한 사랑은 소유욕에 비롯되어 자신의 방식대로만 사랑하고자 했던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극히 이성적인 인물이었으며 원인과 결과에 대한 뚜렷한 해석을 하고 결국 자신이 수긍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두 번째는 베인스가 한 사랑을 들 수 있다. 베인스는 그 지역의 원시 부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남자였다. 그는 도도하고 견고한 분위기를 풍기는 에이다를 조금씩 감성적으로 무너뜨리는 인물이다. 그의 사랑 역시 처음에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에이다의 몸을 탐하고 싶고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그러내며 사랑을 갈구한다. 영화의 중반 이후 부분에서 에이다에게 안면몰수를 당한 뒤 의기소침해지는 모습은 그가 영리하기보다는 어리숙한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스튜어드의 이성적인 행동과는 달리 감성을 우선하여 행동했던 인물이었기에, 에이다에게 감성적인 공감대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 피아노를 연주하게끔 하여 그것을 들어주고 공감하기를 원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자 하는 에이다에게 그의 감성은 피아노 연주를 하는 에이다와 조금씩 소통을 하는 길을 마련해 준다. 결국 에이다는 자신의 미세한 의사소통 방식에 반응하는 베인스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 둘은 비밀스럽지만 열정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스튜어드가 하는 사랑은 지극히 현대인들이 하는 사랑 방식과 다를 것이 없다. 이성적인 판단과 상대방과의 관계, 그리고 보이는 현상들로 사람을 판단하고 사랑을 하고자 한다. 반면에 베인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소통하고자 하는 방식에 맞추고자 노력하며, 강요와 집착을 하기 보단 그 사람의 의사를 더 존중해주는 자세를 가지고 사랑을 한다. 에이다는 결국 베인스를 사랑하게 되고 그와 함께 떠나게 된다.

  영화 속 인물들 간의 사랑을 보았을 때, 스튜어드와 베인스가 에이다를 향해 가지는 감정은 지극히 욕망에 기초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 사랑에 임하는 태도는 두 남자의 태도는 전혀 상반되어 보여진다. 결혼이라는 전통과 관습으로 묶어 두려는 사랑과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의사소통을 공감하며 배려해주려는 사랑. 물론 단적으로 보았을 때 후자의 사랑이 훨씬 가치있고 고귀한 사랑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사랑을 어렵다고 말한다. 그것은 스튜어드가 하는 사랑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베인스가 하는 사랑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가 했던 사랑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표현하는 작은 떨림, 즉 피아노 연주를 통해 드러내는 작은 표현에 귀를 귀울이고자 노력했으며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배려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가고 보다 최첨단을 달리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점점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감정을 우선시 해서 강요하는 사랑을 하기 쉽다. 하지만 사랑이란 온전히 타인과 자신을 완전한 인격체로 대하며 소유의 개념보다는 공감을 하는 타인으로써 존중과 배려를 통해 하는 사랑이야 말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감성적인 사랑이 아닐까, 영화 피아노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2.

  피아노에 대한 레포트를 완성하고 나서 지난 수업시간때 언급되었던 부분에 있어서 철학적으로 사고해보고자 "Part.2" 로 나누어서 쓰고 싶어졌다.

  왜 에이다는 영화의 끝부분에 베인스와 함께 떠나는 장면에서 피아노를 바닷속에 버리라고 한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피아노에 묶여 있던 밧줄에 자신의 다리를 걸고 같이 떨어졌을까.

  실제로 영화 피아노는 제인 캠피온 감독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계에서 많은 이슈와 해석을 몰고왔던 영화였다. 비록 전문적인 자료를 뒤진 것은 아니지만 수업을 하는 가운데에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수업 당시에는 교수님께 미처 다 말씀들이지 못했던 나의 사고를 레포트에 반영하기로 했다.

  인간은 사춘기 시절을 겪고 자신만의 자아를 형성해 가면서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자아는 자신의 가치관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신념이나 좌우명 같은 걸로도 표현된다. 즉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기준으로 판단되어지는 법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타인과 의견차이로 생기는 논쟁을 발생시키는 근본 원인이며 주관이다. 이렇듯 완성된 자아는 시간이 흘러갈 수록, 그리고 많은 경험을 쌓을 수록 완고해지며 좀처럼 바뀌기 힘들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습관이나 성격을 고치기 힘든 것과 아마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에이다를 보자.

  에이다는 6살때부터 30대에 이를때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는다. 소통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그녀가 피아노와 자신의 딸과의 수화를 통해서만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녀가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지극히 일방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의사소통은 쌍방향적인 대화방식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녀의 소통 방식에 답답함과 짜증을 느끼고 거기서 비롯되는 감정들은 더욱 그녀에게 일방적인 감정표현만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시집을 가라던가, 피아노는 희생되어야 한다던가 등의 타인의 강압적인 명령에 휘둘려지는 에이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그녀는 아마 더욱더 그녀 안의 세계에 집중하며 완고한 성격을 만들어 갔을 것이다. 멜로디 소리만을 낼 수 있는 피아노와 함께.

  수십년의 세월과 타인에 대한 강압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철저한 세계는 베인스의 반응에 조금씩 무너져 간다. 그녀는 습지대가 펼쳐지고 열대 우림이 우거진 지역에서도 온 몸을 꽁꽁 감싸고 다닌다. 아마 그녀의 성격이 마치 그처럼 방어벽을 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머리를 감싸는 천에서부터 시작해서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장갑, 검정색 타이즈까지 신고 다닌다. 그런 그녀에게 베인스는 종아리에 나 있는 작은 틈, 타이즈 사이로 뚫려 있는 손톱만한 크기로 구멍이 나서 보이는 그녀의 하얀 살갗에 손을 댄다. 그러면서 그녀의 세계 속에 조금씩 다가가고 에이다 역시 베인스를 악기삼아 미묘한 자신의 반응에도 온몸으로 전율을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거침없는 사랑에 대한 열정은 식을줄 모르고 피아니스트로서 가장 소중한 손가락을 잃음에도 그녀는 그에게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흔한 예로 죽음이나 미래, 유령, 어둠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고 정확하게 정의내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까 두려운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막연하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밤늦게 집에 올라가기 위해 혼자 탄 엘리베이터 뒤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아서 두려움을 느낀다. 새벽에 남겨진 열람실에 갑자기 정전이 되면 알 수 없는 상황이 생길 것만 같아서 두려워 진다. 이렇게 인간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도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에이다는 변화하고 있었다. 어떤 것에도 의지할 것 없이 혼자 구축해온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감정을 만났다. 그녀는 남편을 떠나왔고, 손가락이 잘렸으며, 딸에 대한 배신감도 남아 있었을테고, 익숙해졌던 집을 떠나 아무 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는 영국으로 떠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들이 처음에는 새롭고 신선하게만 다가왔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감정을 느끼면서 세상 끝까지라도 그 남자와 간들 무엇이 두렵겠는가. 더군다나 베인스가 뉴질랜드를 떠나는 것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서둘러 진행된 일들이고 거기에 끌려가듯 배에 올라탄 에이다에게 따로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베인스의 손을 잡고 배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배가 출발하고 잔잔히 흘러가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그녀는 ‘이왕 결심한거 깔끔하게 떠나자!’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자신이 분노하면 땅을 발로 차면서, 식탁을 두들기고 거친 숨소리를 내던 그녀였다. 그녀는 명령에 강요되어 온 삶을 살았지만 자존감과 자존심만은 분명한 여자였다. 그녀에게 변화가 생겼을때 어중간하게 혼란스러운 마음이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보다 깔끔하게 변화를 인정하고 싶은 자존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결정을 내린다, 피아노를 버리고 가기로. 피아노는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었고 그녀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는 피아노였다. 일전에 베인스가 피아노 조율사를 불러서 피아노를 조율할 때 이런 대화가 있다. “이 피아노는 아주 오래되고 견고하고 고급이라서, 시중에서도 보기 힘든 피아노입니다.” 아주 오래되고 견고하게 다듬어져 고급스러움을 풍기는 피아노. 그런 피아노가 바로 에이다다. 변화 앞에선 에이다는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분신과 같은 피아노를 버리고 싶었다. 마치 과거의 오래된 습관을 바꾸려는 듯 떨쳐버리고 가고 싶었다. 결국 피아노를 바다로 던진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지만 인간이 오랜 세월 경험과 함께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매김 해 온 가치관을 바꾸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했다.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과 다름 것는 일이다. 자신의 가치관을 바꾼다는 것은 이전의 자신의 모습들을 버린다는 의미일 텐데, 자신의 삶을 지탱해오던 그 중심을 잃고 나면 자신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새로운 변화들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자존감을 형성해 나가야 하는데, 익숙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더 편하고 낯설지 않기에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자존심 때문에 욱했던 마음을 저지르고 나니까, 자신을 지탱해왔던 과거의 분신이 바다 속으로 잠기는 것을 막상 보니까 그제서야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 찰나의 순간에 자기 인생의 지표와 중심이 사라져 가는데 안두렵겠는가?

  끌려 들어가는 밧줄더미에 그녀의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발을 옮기게 만들었다. 이것은 마치 오래된 연인 사진을, 그것도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아주 소중한 사진을, 지난 수년 동안 그 사진만 보면서 힘을 내고 견디고 외로워하면서도 다시 꺼내보고 했던 그 사진에 불을 당겼을때. 이제는 그 사람을 잊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자고 결심하고 사진의 끝부분에 불을 붙였는데 한 반쯤 타들어가니까 ‘앗! 잠깐잠깐!!’ 하고 불을 끄는 순간. 이 순간의 기분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는 그녀에게 극단적인 사고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녀의 발이 떨어지는 피아노에 묶여 바다속으로 그녀를 끌고 들어가버린 것이다. 순간 카메라는 에이다가 수중 깊이 들어가면서 짓는 표정에 클로즈업하게 된다. 그녀의 표정은 ‘멍’ 하다고 말한다. 우발적으로 했던 행위로 자신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 순간에 그녀의 머리 속은 순백과 같이 하얗게 변했음을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생과 사의 가운데 기로에 놓여 그제서야 그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 사이에 깨끗하게 비워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든 상황이, 그녀가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숨이 막히고 살고자 하는 욕망이 샘솟듯이 생겨난다. 이러한 변화 속에 없었던 에이다였다면, 과거의 에이다 였다면, 그러한 상황 속에서 아마 ‘어차피 삶이 다 이렇게 비루한데, 내 여기서 살아 뭐하겠는가.’ 라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녀는 그대로 피아노와 함께 떨어져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제 과거 속 자아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길을 향해 가고 있었고 사랑과 삶이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화하는 길에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살고 싶어했다. 발버둥을 치고 밧줄에서 다리를 풀어 수면 뒤로 떠오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자궁의 양수에서 밀려 나온다. 이때 생명과 대자연의 어머니,인 바다와 바닷물과 동일한 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에이다는 다시 태어난다. 물에서 새롭게 건져진다. 그리고 갈팡질팡 했던 마음은 온전히 변화하는 세계 속에 맡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녀는 피아노를 잃었지만 영국으로 넘어가 베인스와 가정을 꾸린다. 그녀는 새로운 손가락을 얻었다. 그리고 말도 연습하고자 한다. 그리고 온통 배경은 희고 밝은 색채로 그려진다. 심지어 촬영 기법중에 ‘샤프니스’라고 하는 따스한 느낌의 카메라 연출도 돋보인다. 이제 그녀는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며, 말을 연습하고 있는 중이라는 장면을 통해 새로운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자아를 다시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에이다 라는 인물은 새로운 삶으로서 다시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의미를 남겨준다. 마지막에 그녀는 가끔가다가 바닷 속에 깊이 잠겨 있는 피아노를 꿈꾼다고 했다.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피아노에는 검은 천 같은 것이 꼭대기에 매달려 있다. 그것은 과거의 분신이 거기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새롭게 태어난 에이다와 바닷 속에 잠겨져 있는 과거의 에이다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 속 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여러 주인공들이 자아를 형성해 나가고 변화를 겪는 것을 보았다. 그런게 그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가 공부하는 방식에서도 그렇고 내가 수업에 임하는 태도에서도 그러며 습관적으로 밥을 먹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수면을 취하기 전에 샤워하는 것까지 빼곡하게 ‘내’가 주가 되어 채워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변화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우며 막연한 일이겠는가. 피아노에서 에이다가 피아노를 버리고 바닷 속에 빨려들어가는 장면은 단순히 해석되어서만은 안될 것이다. 그것은 영화 속 에이다가 겪는 일생일대의 커다란 변화이며 결코 쉽지 않지만 그녀는 결국 해내고 말았다는 엄청난 사건을 말해주고 있다는 말이다. 간단히 해석되어서 넘어갈 장면이었다면 백두산 천지의 물이 바다까지 날라가서 바닷물이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만큼 자아의 변화는 끊임없이 고민되어져야 하는 일이고 한 사람의 자아에게는 성인식과 같이 고통스럽고 외로운 것이며 기쁨과 행복이 충만하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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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라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12살 밖에 안되는 소년. 그 소년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 13살이 되면서..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밖에 나가서 마음껏 뛰어 놀고도 싶고, 달콤한 군것질도 하고 싶어지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이리저리 싸우기도.. 웃기도.. 놀기도 하면서.. 그렇게 세상물정 모르고, 살고 싶은 단지 소년, 어린이의 마음.

  아키라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소년의 날카로운 눈빛. 왠지 듬직하고 묵묵히 서 있을 것 같은 모습. 12살박이 어린아이로 보기엔 그 소년의 눈빛은 막연하지만 강했고, 동생들을 이끌고 있었으며 깊은 자괴감까지 생각하지는 못하지만 다른이를 찾아가서 구걸도 해본다. 도망가버린 엄마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며.. 숫자 버튼을 누르며 흔들리는 눈빛도, 뛰어놀고 싶은 마음에 잠깐 앞에 말도 없이 나가버렸던 남동생 때문에 짜증내며 질렀던 소리도, 따라오는 동생의 모습을 멀찌감이 계단에서 내려오며 뒤돌아 봤던 모습도.. 동생들을 공원 공용수돗가로 대려가서 씻기는 모습에서.. 나목과 같은 황량함과.. 쓸쓸함.. 하지만 죽어있지 않는 강인함을 본다.

  동생들이 바라봤던 오빠와.. 형의 모습을.. 난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여동생이 생각난다. 밖에서 돈이나 음식을 구걸해 오는 오빠를 기다리며.. 집에서 청소와.. 빨래와.. 아이들을 씻기고 돌보는 것. 비록 아직 어린 마음에 더 어린 동생들을 언제나 지켜볼 수는 없었다. 자신도 학교에 가고 싶고, 밖에 나가보고 싶고 엄마도 보고 싶고.. 빨간 메니큐어가 지워진 자국에 예쁜 모습으로 꾸며도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오빠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새뱃돈에 적힌 글씨가 작년의 엄마랑 다르다는걸 눈치챘음에도.. 자신이 정말정말 사고 싶었던 피아노 값도 내어놓는 그 어린 소녀의 마음.. 불안하지만 그렇다고 그 틀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 소녀의 마음..

  최연소 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소년 야기라 유우야.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때문에 미처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해서 감독이 대리수상했다고 알고 있는데, 아이고 ㅋ 그런 그의 모습이 더욱 천진난만하고 순수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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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man has a free will. Freedom.
  Then, we can choose or act anything.
  Although living in society that called civilization or family by a fence with learning many standard and restriction, we finally realized to have freedom which can choose by ourselves.

  The main character in this movie is a lobbyist who is spokesperson about tobacco company that everyone know the harmful about it. But He is an eloquent speaker. It makes others follow to his opinion. His friends in M.O.D group are workers at a similar type of occupation to meet with him frequently.

  He gave a talk about negotiation and dispute to his son. In his words, Negotiation is to give back something when he takes something at other person. But dispute is just to take it to get paid for win at dispute situation. A dispute is more difficult than negotiation. But He has a great eloquent person. At the end of the movie, His occupation, a lobbyist, and speaking ability prove his real worth at some situation that he fall in dangerous situation. It is really respectful.

  Sawing the movie, I worried about what is the PR person who I want to be. I wanted to be a PR person who makes a campaign which protects our environment at NGOs. Then, what is the PR? It is a similar thing with dispute like in this movie. It is not exchange to get something, It just work to announce something which I wants to notice or makes to be acted others to achieve some goal.

  I found two abilities in this movie. First, He has a wide knowledge about his opinion. Second, He has done with confidence and imposing manner at any place even he was behind the eight ball. As this two elements be in harmony, these make a great persuasion by PR person at last.

  But it is a different thing with having a good ability or ethics. In this movie, He made by lobbyist with comics and lampoons. But real PR person has a belief whether It is good or not at our society. It is not a human who has a good or bad concept, He talked about death rate in the world without any sense of guilt even be joking and kidding. PR person can makes belief at others mind and influences to be wide spread about something. Although It just to get a profit for himself, He must acts in other side with justifying the social evil if he has the minimum belief by PR person.

  This movie showed a great lobbyist who is talent and tact but really don't has a mind of good and evil. It means that PR person need to have a great ability about noticing he want to persuade others, but it is more important that must have a moral bel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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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놈 목소리.
  영화 개봉 당시에 실제 목소리 삽입, 미종결 수사 실화 등등 너무나도 거창한 언론플레이 때문에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던 영화였다. 하지만 챙겨보고 싶었던 영화는 아니라서 그냥 기억의 저편에 접어두었다가 이번에 곰플레이어 무료영화를 떴길래 보았다. 중간고사도 끝났겠다, 감기몸살에 걸려 집밖으로도 못나가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동안 보지 않았던 영화. 그런데 생각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진짜 그놈 목소리" 였다.

  오만한 아나운서인 설경구와 소시민적인 아내 김남주. 실로 김남주의 연기를 제대로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기대를 안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 ... 어렸을적 백야(숫자;;) 뭐시기 드라마에서 굉장히 시크한 여인내의 냄새를 풍겼던 김남주를 기억하는 나에게 냉정한 시선으로 성인이 된 후에 그녀의 연기력을 바라보는 입장에 섰으니..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에는 좀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었던 "밀양"에서 칸느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전도연의 연기에 익숙해 있던 나로선 도저히 유괴당한 아이를 가진 엄마를 표현하고자 하는 김남주의 연기에 만족을 할 수가 없었다. 아마 영화 전체 흐름상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는 평화로운, 그리고 중상류층의 가정에 유괴라는 사건이 터지고, 부모인 설경구와 김남주가 유괴범의 전화질에 농락당하면서 진행된다. 참 신기했던 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그 유괴범이 대범한건지 약삭바른건지 40여통이 넘는 전화를 줄창나게 했다는게 너무나도 놀라왔다. 마지막에 들려주는 진짜 유괴범의 목소리는 영화의 스토리 구조를 떠나서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많은 이 영화의 관객들 역시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이 영화의 지정한 묘미가 바로 "진짜 그놈 목소리"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설경구가 뉴스에 나와서 눈물을 머금으며 치는 대사들은.. 아, 나의 손발이여. 오글오글오글.. 당장이라도 오징어 굽는 연탄이라도 내오고 싶은 심정.. 간혹 대사를 까먹은 듯한 그의 흔들리는 눈빛마져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아, 말하다보니까 영화 처음 나오는 설경구의 아나운서 멘트도 좀..ㅠㅠ. 멘트를 하면서 고개를 계속 갸우뚱 갸우뚱 거려서 아쉽지만 아나운서로서의 연기연구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카메라 안에서는 고개의 미세한 움직임도 고정된 화면으로 보는 관객에게는 여간 불편한 장면들이 아닌데, 이건 뭐.. 아무래도 자유분방한 연기에는 설경구가 빛을 발하지만 정제된 연기에는 그 자유로운 요소들 때문에 조금씩 숨기지 못하는 모션들이 생기는 것 같았다.

  전체적인 카메라 워크나 화면 이동, 미쟝센 등을 논하기에는 미처 생각할 틈이 없었다. 자꾸 튀는 배우들의 연기가 집중력을 흐트려서.. 그래도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은.. 바로 그 한강 고수부지 장면. 그럴꺼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솔직히 그럴줄 알았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빨랐을 줄이야.. 

  궁금하면 영화를 보면 된다. ㅋㅋ. 어쨋든 그 유괴범도 참 대단하다, 그 오랜시간 그렇게 질질 끌면서 돈이란 돈은 다 챙기고. 실제 목소리 엄청 찌질하게 들리던데.. 그 찌질함이 오히려 더 화를 돋구는 듯했다. 그런 놈에게 놀아났다니.. 아후, 몽타주와 목소리, 필체가 공개됬다고 하더라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아봐서 신고할 사람이 있을런지. 하늘은 뭐하나, 그런 악인 안잡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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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블로그가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블로그 열풍이 한창 불때에도
그저 싸이 홈페이지에 다이어리나 끄적거리는게 다였는데..
그래도 시대의 흐름은 어쩔수 없나보다.
어쩌면 지금 블로그를 시작하는 난
후발주자일지도 모르겠다.
곧 트위터와 같은 단문 소셜 네트워크가 새로운 3세대 매체 자리매김 할지도 모르는 이 시점에
이제 와서 블로그를 한다니..

어쨋든 늦었지만 만나서 반갑다 블로그야.
그리고 나를 초대해주신 "공현" 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딱 첫번째 블로그에 딱 글 한번 남겼는데 딱 바로 초대해주셨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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